고주몽과 고구려
목차
고주몽에 관련된 현대인의 이용
고구려 건국 일화
주몽의 옥저 정복
고구려와 부여의 관계
1. 고주몽에 관련된 현대인의 이용
부산 광역시 서구에 위치한 고기 전문점 ‘고주몽’
맛있겠당.... 특별한 날에 먹으면 좋겠네^^
출처: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2256883&memberNo=36529745&vType=VERTICAL
2. 고구려 건국 일화
그의 또다른 이름은 동명성왕.
(1)해모수와 유화부인
①제왕운기
제왕운기에는 고구려 시조인 주몽의 탄생 설화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을 전하고 있다.
"천제의 아들 해모수가 물의 신 하백의 세 딸인 유화, 선화, 위화가 더위를 피해 압록강 웅심연에서 놀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가까이 하려 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이에 신하가 웅장한 궁궐을 짓고 술로 유혹해보라고 권유하여 해모수가 이에 따랐다. 초대에 응한 세처녀가 술 대접을 받고 만취한 후 돌아가려 하자, 해모수가 이를 가로막았다. 그러자 세 처녀가 도망을 하였는데, 그 중 유화가 해모수에게 잡혀 궁궐에서 잠을 자게 되었는데, 해모수와 정이 들고 말았다. 그 뒤 주몽을 낳으니, 이가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이다."
출처 : 에듀인뉴스(EduinNews)(http://www.eduinnews.co.kr)
②삼국사기, 삼국유사
연못 안에 세 처녀 아름다운 모습에 반하였다. 훤화 · 위화는 돌아갔으나 유화는 해모수와 만나게 되었다.
하백이 이러한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하였다. 처음엔 결혼을 인정하였으나 유화에게 크게 노하여 시녀 몇 명을 붙여준 뒤 귀양을 보냈다.
이후 동부여의 왕 금와왕이 우연히 우발수(優渤水)로 나들이를 갔다가 유화를 만나고, 그 처지를 불쌍히 여긴 금와왕은 유화를 궁궐로 데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내아이 하나가 알을 깨고 나왔다. (출처, 위키백과)
-> 부여의 건국 신화는 어머니가 시비인것만 빼고 똑같음. 이를 통해 고구려는 부여를 계승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신화를 차용한 것을 알 수 있다.
3. 주몽의 옥저 정복
옥저와 동예를 손에 넣어 기름진 땅에서 나는 곡식과 동해 바다의 풍부한 해산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출처: http://kids.hankooki.com/lpage/culture/201405/kd20140515160100136190.htm
4. 고구려와 부여의 관계
(1)고구려: 부여의 계승
우선 건국신화의 유사함에서 고구려가 부여를 계승함을 알 수 있다.
마한의 목지국과 비슷한 형태인 듯하다.
(2)고구려 VS 부여
송 교수는 “현행 교과서에 나와 있는 것처럼 부여를 옥저ㆍ동예ㆍ삼한과 같은 초기 국가로 간단하게 처리하고 넘어가선 안 된다”고 말했다. 기원전 3세기 무렵 등장한 부여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도 3세기 중엽까지 “이웃나라의 침략으로 파괴된 적이 없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강력한 군사력과 통치력을 소유했던 나라다.
시기 나라 고구려/부여 |
고구려 |
부여 |
|
|
해모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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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루 |
BC37~BC19/BC 59~BC 19 |
동명성왕 |
금와왕 |
BC 19년 9월 ~ 18년 10월/ BC 20~ AC 22 |
유리명왕 |
대소왕 |
18년 10월 ~ 227 /197~? |
대무신왕, 민중왕, 모본왕, 태조대왕, 차대왕, 신대왕, 고국천왕, 산상왕 |
(이전 왕은 모름) 위구태왕 |
227년 ~ 248년/? |
동천왕 |
간위거왕 |
248년 ~ 270년/? |
중천왕 |
마여왕 |
270년 ~ 292년/?~285 |
서천왕 |
의려왕 |
292년 ~ 300년/286~316 |
봉상왕 |
의라왕 |
300년 ~ 331년/316~346 |
미천왕 |
현왕 |
331년 ~ 371년/? |
고국원왕 |
(이전 왕은 모름) 북부여왕 |
371~519/?~494 |
소수림왕,고국양왕,광개토대왕,장수왕, 문자명왕 |
(이전 왕은 모름) 잔왕 |
494년 고구려에 귀속되기 전까지 700여년 동안 나라를 유지했다.
송 교수는 “고조선이 우리의 첫 국가라는 사실은 변함 없지만 고조선에 너무 경도돼 있는 측면이 있다”며 “부여와 달리 고조선의 역사적 경험은 다음 시대로 잘 계승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출처: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511061621786293
생각해보니까 부여가 광개토대왕, 장수왕도 아니고 문자명왕 때 멸망이 되다니... 부여 은근 센 나라였구나!!! 5C 말까지 잘 버텼구나 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