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호 16국과 거란족, 여진족에 대해 알아보자!
목차
Ⅰ. 5호 16국
Ⅱ. 거란족
Ⅲ. 여진족
Ⅰ. 5호 16국
5호 16국 시대를 아시나요?
모르신다면... 저는 친절하니까 알려드릴게요^^.
고조선이 멸망된 이유는 한나라 및 한사군 때문이죠. 어쨌거나 한나라는 초기엔 잘나가지만 후한은 정말... 멸망 직전입니다. 네이버 웹툰 삼국지톡에 나오는 후한 말기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가 아는 위,촉,오의 세 나라가 만들어집니다. 곧 위나라가 (서)진으로 통합하나 사마씨 놈들이 다 말아먹습니다.
사마씨를 대신한 여러 부족들이 결국 장악을 하기 시작하는데요,
그것이 5호 16국 시대입니다. 아직도 이해 안되면 네이버 지식백과 보고 오세요.
저는 친절하니까, 지식백과 링크 남기겠습니다~~
링크: https://terms.naver.com/entry.nhn?cid=62059&docId=1832988&categoryId=62059
그럼 이제, 5개의 호랑이들을 살펴 보겠습니다 :) 고고씽~
1. 선비족
(이미지 출처: 네이버 디즈니 뮬란 포토)
이름이 왜 선비족일까요?
조선시대의 선비는 일단 아닙니다 ㅎㅎ
동호(=동쪽 오랑캐, 즉 몽골)계 유목·수렵·목축민에 대한 명칭입니다.
선비라는 이름은 동호가 흉노에게 멸망 당한 뒤에 살아남은 동호의 일파 중 ‘선비산’으로 들어간 무리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출처: 나무위키)
선비족은 위진남북조시대에는 북조를 세웠습니다. 선비족은 중국에 북위와 북연을 세웠는데 선비족의 북위는 서위, 동위를 거쳐 북주, 북제로 이어졌습니다.
참고 링크
고구려 5대 모본왕 때는 선비족이 아직 분리되지 않은 상태였고, 그는 선비족과 연합하여 동북방 지역에 위협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그렇게 나쁜 사이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어쨌거나,
선비족의 유형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중에는 우리 한민족과 친한 부족도 있고 으르렁 거리는 적부족도 있습니다.
모용선비, 단부선비, 우문선비, 탁발부, 독발부, 걸복부, 하란부, 철불부, 독고부
(1)모용선비(->전연) / 전연(前燕, 307~370)
-선비족의 집단 중 하나. 요하 유역(요동 지방)에 거주.
-위나라때 건국 및 복속됨. 그러나 285년부터 서진의 변경을 침입 시작.
Q. why? 대표 인물: 모용외
->우문 선비를 공격하기 위해 진나라(서진)에 표를 올려 허락을 구했으나 거절당함. 그래서 진나라를 적국으로 삼았다.
->285년 동쪽으로 부여 공격. 부여왕 의려는 대책없이 공격당하자 자살했고, 모용외가 그 국성을 함락하고 10,000여 명을 포로로 잡아 귀환. 부여 회복을 위해 하감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서)진의 요동 벼슬관직을 가진 ‘하감’이 가침을 보냈다. 가침이 요격하자 손정은 패하고 전사했으며, 이로 인해 부여국이 회복되었다.
->293년, 고구려를 침략했는데, 그 군세가 매우 강하여 고구려 왕인 봉상왕마저 도읍을 떠나 서 신성으로 피난을 가야 했다. 고구려 신성에서 북부소형의 벼슬을 지내던 고노자가 기병 500기를 거느리고 봉상왕을 맞이하기 위해 왔다가 봉상왕의 행렬을 추격해오던 모용선비군 을 발견하고는 이를 공격하였다. 결국 모용외는 고노자에게 패하여 물러났다.
->이후 296년, 모용외는 다시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하였는데, 서천왕의 무덤도 도 굴하였다. 그러자 봉상왕이 창조리의 말에 따라 고노자를 서쪽의 요충지인 신성의 태수에 봉하였고, 고노자가 신성태수가 된 이후로 모용외는 다시는 고구려를 침략하지 못하였다.
->304년에 흉노족 사람인 유연이 자립해 한나라를 세우고, 311년에는 진나라의 수도 낙양을 함락했다(영가의 난). 이러한 배경 때문에 진나라에서는 많은 유민이 발생했고, 이들이 모용부로 귀부했다. 전연의 제 1대 군주 모용황은 모용외에게 진나라의 학문을 가르쳤다. 모용부는 진나라의 문물을 수입하여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318년 ~ 321년에 고구려(미천왕), 우문부, 단부가 손을 잡고 모용부를 공격하여 수도 극성까지 포위하나 모용외가 이들을 교란시켜 우문부가 모용외와 한 편인 것처럼 의심하게 하여 이들이 스스로 물러나게 했다.
->320년 고구려가 요동을 공격했으나 모용외가 격퇴했다. 미천왕과 모용외는 일진일퇴하였으 나 성과는 없었고, 고구려의 요동 정벌과 전성기는 이렇게 100년을 미루게 되었다.
-333년에 모용외(모용선비의 영웅)가 사망. 아들 모용황이 왕으로 즉위하여 전연 건국.
이미지 출처: http://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33311
(2)단부선비
단부선비(段部鮮卑)는 서기 2세기경에 단석괴(壇石槐)가 세운 선비족의 일파이다. 그러나 단석괴의 사후 다시 분열되었다.(위키 백과)
(3)우문선비(->북주)
허(河)유역을 중심으로 유목 생활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문부는 처음에 모용부에 복속하였고, 모용부가 탁발부에 의해 멸망하자 거주지를 북위(北魏) 초 무천진(武川鎭)으로 옮겨 그 현민(縣民)이 되었다.
557년 우문부 출신의 우문태(宇文泰)는 처음 북위에서 일어난 6진의 난에 참가하였다가 하발악(賀拔岳)에게 귀순하여 두각을 나타내었다. 하발악의 사후 그가 가지고 있던 기반으로 관중지방에서 세력을 과시했다. 세력을 확대한 우문태는 서위를 멸망시키고 북주(北周)를 세웠다. 북주는 581년 수나라에게 멸망하였다.
(4)탁발부(->대나라, 북위)
몽골에서 화북(華北)으로 들어왔다. 수나라 때에는 토욕혼(吐谷渾)의 유력한 왕족 중에 탁발씨가 있었고 또당나라 때에는 탕구트에 탁발씨가 있었으며 송나라 때 서하(西夏)의 왕가(王家)도본래는 탁발씨로 불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위나라 때 조공을 바쳤고 서진 때 위관의 계략으로 선비족끼리 내분이 일어나 한동안 약해졌다가 탁발녹관이 즉위하면서 탁발의로, 탁발의타 등에게 땅을 주어 세력을 셋으로 나눌 정도로 강성해졌다. 이 중에서 탁발의로는 대나라를 건국했다. 그들이 세운 국가로는 대나라, 북위가 있다.(출처: 나무위키)
(출처: 위키백과)
(5)독발부(->남량)
독발선비(禿髮鮮卑) 또는 하서선비(河西鮮卑)는 선비족의 일파로서, 남량을 건국하였다. 독발부는 돌궐에 가까운 선비족으로 남양이 멸망한 이후에 북위에 귀속되었다. (출처: 위키백과)
오호십육국시대 때 비수대전으로 전진이 몰락하면서 전진의 장수인 여광이 양주를 장악해 후량을 건국하고 독립하자 흉노 등과 함께 여광에게 반란을 일으킨 장대예와 협력해 후량과 싸웠으며, 후량과의 대립 과정에서 남량을 건국했다.(출처: 나무위키)
(6)걸복부(->서진)
선비족의 집단 중 하나로 농서 인근에 거주했다.
오호십육국시대 때 전진을 공격했다가 패해 항복해 일시적으로 복속되었으며, 비수대전 직전에 군사를 일으켰다가 비수대전으로 전진이 패하면서 수많은 세력들이 난립했다. 동진이 패배한 소식이 알려지면서 걸복부는 농서 일대를 장악해 걸복국인이 걸복부를 이끌고 독립한다.
그들이 세운 국가로는 서진(西秦)이 있다.
(7)하란부
오호십육국시대 때 대나라에 복속해 탁발씨의 외척이 되었으며, 대나라가 멸망한 후에 탁발규를 추대해 북위를 건국하게 했다.
여러 세력들에게 매번 격파당하는 세력이 약한 집단으로 385년에는 독고부의 공격에 격파당했으며, 391년에 하란부에서 내분이 일어나 북위, 후연 등의 공격을 받아 격파되기도 했다. 이후 북위의 한화 정책으로 성씨를 하란(賀蘭)씨에서 하(賀)씨로 고쳤다.
(8)철불부(->북하)
백부 선비족과 함께 전조에 귀부해 전조, 후조, 전진 등에게 차례로 협력했으나 탁발부의 공격으로 오르도스를 상실해 전진에 이주했다가 376년에 전진의 탁발부 공격에 협력했고, 오르도스로 이주해 탁발부, 유연 등을 복속시켰다.
이후 386년, 탁발규가 전진에게 멸망했던 대나라를 부활시켰다가 국명을 고쳐 북위를 건국하자 이와 대립하였다. 그러던 중인 391년, 탁발규의 공격으로 많은 인명과 가축을 잃었을 뿐 아니라 수장인 유위진과 그 일족들이 대부분 몰살당하면서 일시적으로 멸망하였다.
이후 유발발이 선비의 여러 부족을 통합하고 후진에게 독립하면서 북하를 건국하게 된다.
(9)독고부
흉노족(남흉노)을 기반으로 선비족(탁발부)과 혼합한 집단이다.
서연에 도움을 요청했으며, 후연의 지원을 받은 탁발규와의 싸움에서 패해 축출되었다. 이후 독고부에서 형제 간의 내란이 일어나자 그 틈을 타 북위, 후연 등의 공격을 받아 패하고 그 세력은 북위, 후연 등에게 흡수되었다.
2. 흉노(->북하)
흉노가 중국 역사서에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기원전 4세기 말의 전국시대이다. 흉노는 가끔 진나라에 대항하는 각국의 연합에 참가하여 진나라를 공격했지만 매번 참패로 끝났다.
기원전 209년 묵돌 선우가 아버지 두만 선우를 죽이고 선우자리에 올랐다. 묵돌은 만주를 공격해 동호를 멸망시켰고, 서쪽으로는 천산 산맥의 월지를 공격해 중앙아시아로 밀어냈다. 흉노의 세력이 강대해지자 여러 부족들도 흉노에 복속되었다. 한 문제가 우현왕을 치게 했으나 당시 실크로드 정책에 집중하고 있던 목돌 선우는 흉노의 책임을 인정하고 물러났다. 이후 우현왕은 서역을 공격해 월지국을 측출하고 서역의 26개국을 복속시켰다. 이로 인해 실크로드는 흉노의 손에 넘어갔다.
전한이 멸망하고 신나라가 세워졌을때 흉노는 신나라를 침공하기도 했다. 이후 신나라가 멸망하고 후한이 세워졌을 때 흉노는 남북으로 분열되었다. 남흉노는 오르도스와 산시성에 살며 정착민이 되어 후한에 사실상 복속되었고, 북흉노는 몽골 고원에 남았다.
서기 89년 후한은 북흉노를 공격했고, 북흉노는 멸망했다.
흉노는 조조와 그가 세운 위나라에 의해 5부로 재편되어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 삼국시대 말기에 이르면 남흉노의 대다수는 남하하여 한족과 동화되었다.
남흉노 선우의 후손인 유연이 한나라(전조)를 건국하고 서진을 무너뜨려 5호16국시대를 열었다. 407년에 산시성주변에 흉노 국가인 북하가 세워지기도 하지만 이 역시 431년에 멸망하면서 흉노는 역사속에서 완전히 소멸하게 된다.
3. 갈족
갈족은 본래 흉노족의 지배를 받던 피지배 종족의 하나로써 흉노의 일파로 여겨졌다. 코가 크며 눈 색깔이 푸르거나 수염이 붉고 많다고 기록되어 있다.
석호 시대에 갈족의 후조는 중국의 화북 대부분을 제패하여 전성기를 이루게 된다.
그러나 석호의 폭정으로 후조가 피폐해지고, 결국 한족, 선비족 등에 동화되었다. 이후 완전히 동화되어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4. 저족(->전진, 후량)
중국 서쪽에서 3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나타난 민족. 오호십육국 시대에 이르자 저족이 세운 국가인 성한. 구지, 전진(前秦), 후량(後凉) 등이 나타났고 이로 인해 한족과 교류하면서 점차 한족에 동화되었다. 최후까지 융화되지 않은 저인들은 번인(番人)이라 불렸고 수, 당 이후에는 사라지게 되었다.
5. 강족(->티베트)
중국의 소수민족. 티베트족의 직접적인 조상이다. 현대에는 캄 지역(쓰촨성 아바티베트족창족 자치구 또는 간쯔티베트족 자치주 등지)에 분산되어 분포하고 있다. 인구는 약 20만 가량이다. 강태공의 후손인 천수강씨의 인구가 600만 명임을 감안하면 적은 숫자다.
Ⅱ. 거란족(->몽골)
동호-선비에서 갈라져 나와 4세기에 등장했으며 내몽골 지역을 영유하다가 10세기에 요나라를 세워 동아시아 북방의 패자로 군림, 전성기를 맞이했다.
멸망한 이후에는 금나라 등의 지배를 받다가 몽골 제국이 발흥하자 사회 각지에서 활동했으며, 몽골 제국 당시까지는 거란족은 몽골족과 어느 정도 구분되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점차 언어, 문화적으로 비교적 가까운 몽골족에 동화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네이버 웹툰 오늘의 순정망화 거란)
Ⅲ. 여진족
만주 일부 지방에 거주했던 퉁구스계 종족집단.
말갈족이라고 불렸다.
고려시대에는 지금의 함경도 지역에도 여진족이 거주했다.
문명의 혜택을 보지 못한 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주변의 국가들은 여진을 미개한 집단으로 무시했다. 하지만 전투력에 관한 기록으로는 한국과 중국 같은 정주문명 뿐만 아니라, 유목민족인 몽골과 거란마저도 여진족의 잠재력을 두려워 했으며, 간간히 통합이 가능할만큼의 외부 자극을 받았을 때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보여주었다.
출처: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