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선일보: 1920년 3월 5일
창간 당시의 발행 목적은 ‘신문명진보주의(新文明進步主義)의 선전’이었다.
초기 사장 조진태와 부사장 예종석은 모두 썩은 달걀이었다. 다행히 약 3개월 후 6월 12일에는 두 인간들이 물러나고 편집국장 최 강이 발행인을 겸하였다가 창간 5개월만인 8월 12일부터는 대정실업친목회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주주들이 독립적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변호사 출신 유문환(劉文煥 ?~?)이 1920년 8월 15일 2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친목회와 단절하고 새로 사장을 맞이한 조선일보는 항일(抗日) 논조를 강화하며 압수와 정간을 되풀이하게 된다. 유문환은 1921년 4월 8일까지 사장으로 재직했다. 그 외에 조만식이라는 독립운동가도 사장으로 취임했는데, 방응모 사장부터 친일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게 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의 언론인이자 정치인이다. 호는 계초(啓礎)이다. 제9대 조선일보 사주를 역임했다(1933년 3월~1950년 7월).
1933년에는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가 마련한 ‘한글통일맞춤법’을 채용, 과감히 지면에 옮김으로써 민족문화 향상에 기여하였다. 특히, 학예면을 활용하여 인문 발전에 정성을 쏟았으며, 같은 해 신춘문예작품 모집을 시작하여 문예를 통해서 발산되는 민족혼을 앙양하고 젊은 인재들 발굴을 꾀하여 오늘날까지도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아울러 1935년 월간 종합지 『조광(朝光)』을 창간·발행하였고, 1936년에는 여성교양지 『여성(女性)』을 월간으로 펴내 우리 나라 여성의 역할과 지위 향상을 유도했으며, 학생들을 위한 잡지로서 월간 『소년(少年)』을 출판하였다.
그러나 1930년대 『조선일보』는 민족지로 부를 수 없는 모습을 보였다. 변모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제의 통제에 놓여 사실상 언론자유가 없었다. 둘째, 일제강점 이후 20여년이 흘러 지식인 사이 항일의식이 다소 무뎌졌다. 셋째, 항일투쟁 노선이 분열하며, 지식인 역시 분열하였다. 넷째, 상업성에 치우치며 언론의 사명을 잊었다. 그 결과 1930년대 들어서면 조선일보는 총독부기관지와 구분이 힘들 정도로 변모하였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난 이후 1940년 8월 10일 지령 6,913호로 강제 폐간 당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조선일보(朝鮮日報))]
어떤 뉴스에서는, 사실 강제 폐간이 아니라 합의된 폐간이라는 증거를 가져왔다.
URL: https://youtu.be/RNhQLg9c8EE
(2) 동아일보: 1920년 4월 1일
일제강점기의 언론인으로서 김성수가 동아일보를 창간하고 경영했다.
1915년 중앙학교, 1932년엔 이용익에 의해 1905년에 설립된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하여 경영하였고, 광복 후인 1946년엔 보성전문학교를 개편하여 고려대학교를 창립하는 등 교육사업가로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정계에서도 제2대 대한민국 부통령을 역임하였으며, 한국민주당을 창당했다. 호는 인촌(仁村).
1962년에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건국공로훈장이 추서되었으나, 2018년 문재인 정부에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에 따라 국무회의 의결로 서훈을 취소하였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동아일보』 제호 배면의 무궁화도안 삭제령 등 총독부의 압박은 더욱 강화되었고, 1940년에 들어서서 폐간을 종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그 해 8월 10일『조선일보』와 함께 총독부의 강압에 못 이겨 폐간의 비운을 맞았다.1945년 12월 1일, 강제 폐간당한 지 5년 4개월 만에 중간(重刊)되었다. 체재는 타블로이드판 2면제로 발행되었다. 광복 이후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온 신문계에 전통 있는 신문의 출현은 방황하는 민중에 큰 기대를 안겨 주었고, 특히 우익민족진영에 큰 힘이 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동아일보(東亞日報))]
이미지 출처: http://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10360
조선일보든 동아일보든 결국 뒤로 갈수록 변절을 하게 되는 현상이 나왔다.
분명 독립운동에 기여했는데 왜 갈수록 민족 반역의 길로 가게 된걸까...
사람들이 조선, 동아를 굉장히 싫어하는데 그 마음 알 것 같다.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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