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맹왕국의 뜻은 간단히 말하면 다음과 같다.
연맹왕국: 다양한 지배자들이 있고, 여기서의 왕은 그냥 허수아비용이다.
연맹 왕국은 어떻게 보면 지방자치제보다는 봉건제와 유사하다.
봉건제: 왕이 넓은 곳을 못 다스리니 국왕의 가신, 혈족들에게 나누어줌으로서 그들이 다스리도록 하는 제도이다.
오늘날의 지방자치제는 간접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간접+직접 민주주의 체계로 만드는 요소 중 하나의 제도이다.
연맹 왕국과 고대국가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선 이론 상으로는 다음 표로 구분할 수 있다. (나름 고민해서 만든 표인데 도움이 됬다면 하트 누르세요..)
고대 국가 특징 및 조건 |
|||
왕 |
신하 |
||
who 왕의 후손을 위해 |
왕위 세습권 |
how 어떻게 관리하지 |
복색, 관등 제정 |
when(time) 느린 관습->빠른 법 |
율령 문서화 |
||
where 영토 관리 위해 |
중앙/지방 조직 정비 |
||
why 지배 이념 확립 |
불교 국교화 (토착 신앙 수용) |
여러분들이 암기할 수 있도록 왕은 wh로 시작하고 신하는 how만 했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육하 원칙을 차용하여 암기할 수 있다.
이론은 이쯤하고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에 더불어 부여까지 추가하여 그 차이를 알아보자.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순으로 살펴보자.
(1) 부여
출처: yjlove.me/bbs/board.php?bo_table=sub1_1&wr_id=676
부여는 유목국가로 이루어져 있기에 동물을 숭상했다. 그리하여 마가(말), 우가(소), 저가(돼지), 구가(개) 모두 부르는 사출도(왕까지 합치면 5부족 연맹체)라는 부족들이 왕을 주변으로 둘러쌌다.
부여는 고대국가로 넘어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여는 5세기 말 문자명왕 때 멸망했다. 왜 오래 살아 남았을까 추측해보건데, why 즉 부족 세력의 이념이 확고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들에게는 애초에 불교같은 국교가 필요 없었던 거고 재산, 권력이 큰 부족들이었다.
다만 관습에 집착했던 탓에 융통성이 부족했고, 그것이 부여를 멸망하게 만들었다.
(2) 고구려
한국사를 꼼꼼히 공부하기 전에는 몰랐는데 최근 알게된 사실은 고구려가 철제 기술이 뛰어났다는 것이다.
내가 사는 지역 김해에서 하도 금관가야는 철제 기술이 우수하다~ 대단하다! 이렇게 세뇌같은 홍보(?)로 다른 나라는 별로 뛰어나지 않은 건가...? 하고 생각했다.
천만의 말씀. 고구려>>>>>>금관가야이다.
일찍이 중국과 교류를 활발히 하기도 하고 철이 풍부했기 때문에 기술이 압도적이다.
고주몽은 (대)부여에서 내려와 BC 37년 졸본 부여, 즉 고구려를 건국한다.
졸본부여도 5부족 연맹체 였다. 소노부·계루부·관노부·절노부·순노부의 5부족이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주몽이 계루부에 편입하여 고구려를 형성했다. (+추가로 주몽은 부자 소서노 찬스를 써서 왕이 될 수 있었다.)
그 이후 부여씨, 해부루와 엎치락 뒷치락하며 왕이 이어지다가,
태조왕 때부터 본격적인 고씨가 왕위를 계승하고, 태조대왕 같은 경우 형제세습을 하였다. 고대국가의 조짐이 시작된다. 그래서 그런지 연호도 썼다.
그러다 고국천왕때 부족 5부를 행정 5부로 바꾸고, 을파소를 등용하여 진대법을 제정하였다. 이 시기에는 중국은 후한 말이었다. 위기를 틈 타 내부 정권을 안정화한 것이 인상 깊다.
3세기 동천왕(227-248), 서천왕(270-292) 때는 위의 침입으로 위기가 있었다.
동천왕: 시기- 위,촉,오가 서로 경쟁할 때
입장- 초기: 위나라와 적대 관계. 오나라에게 우호적.
이후: 위나라에게 친한척 하며 적대 관계로 바꿈. + 오나라에게 적대적으로 바꿈.
사건 - 의기양양하게 위나라에게 덤벼들다가 큰 위험을 받고 퇴각하게 된다.
서천왕: 시기- 삼국지 최종 승자 사마의가 (서)진을 통합한 때
입장 - 소극적
4세기 초 미천왕: 배경 – 5호 16국(중국 대혼란 시기)
영향 - 낙랑군 퇴치-> 대동강 유역 확보
-4세기 중후반 고국천왕: 선비족(전연)과 백제 공격으로 전사
-4세기 말 소수림왕(371~384): 전진과 수교 및 불교 수용, 태학 설립,
율령 반포[고대국가 완료]
(3)백제
-기원전 18년 온조왕: (따뜻하고 복이 많음) -> 십제 건국
-3세기 고이왕: 소국 싹슬이 –한강 유역, 목지국
영토 확장 노력 – 한군현과 싸움
신하 정비- 6좌평 관제 마련, 관리 복색 제정
Q. 고이왕 뜻이 뭐임 -> 옛날이름의 왕 이래.
Q2. 고이왕은 왜 율령반포하고 낙랑군 공격함? 목지국 왜 점령함 -> 연맹왕국에서 고대국가로 바뀌고 싶으니까... ^^;
-4세기 후반 근초고왕: 소국 싹슬이 -마한 통합
영토 확장 노력 -고구려 평양 공격
국제적 교류; 중국-백제-가야-왜 연결, 해상 교역로 확보
동진, 요서, 규슈와 교류
초고왕-> (근)초고왕 조작: 왕위 계승 확립
Q. 백제 근초고왕 이전에는 형제세습함? 안했으면 왜 갑자기 부자상속됨? -> 디게 복잡한데... 뭔가 조작을 좀 많이 했대. 게다가 어린 왕 하나 몰래 죽이고 자기 아빠가 왕이었으니까 명분이 있잖아. 또 지는 혈통을 강조하는 척 할려고 근초고왕 이렇게 지은거임.
- 근구수왕때 : 일본에 아직기, 왕인 파견
Q. 직기, 왕인 박사 뭐하는 사람임 그리고 몇세기 사람임 -> 언덕이 곧바른 길이라는 뜻으로 아직기래. 이 사람은 백제의 학자이고 백제의 문화를 일본에게 알려주었다.
왕인 박사는 왕을 사랑한다 해서 왕인 박사라 캅니다. 4세기 근구수왕 때 일본에 파견됨.
-4세기 말 침류왕(384~385) : 불교 공인 [고대 국가 완료]
Q. 침류왕때 왜 동진에서 불교 수용함 -> 아무리 동진이 5호 16국 혼란기였어도 침류왕이... 중국 중에서도 젤 가까운 데에서 했잖아.
(4)신라
-기원전 57년 박혁거세 신라 건국& 이사금:박석김 계승
-4세기 후반 내물왕(첫번째 김씨): - 김씨 세습권 확립(+아버지 왕으로 승격시킴)
- 이사금(=임금)->마립간(=대수장) 변경
-공격: 활발한 정복 활동- 낙동강 동쪽 진한 지역 장악
-수비: 가야,왜 패거리의 공격 -> 광개토 대왕 조력
(증거: 호우명 그릇)
(4) 가야
①금관가야: 낙랑군과 왜에 중계 무역 -> 철기 문화 발전
-배경 : 금관가야가 6가야로 분열되서 신라에게 도움 요청 -> 신라와 정략결혼
-사건: 왜랑 패거리짓 -> 신라가 고구려에 도움 요청
결과: 고구려 군 공격으로 인한 쇠퇴 및 6가야 분열
②대가야: 중국, 왜와 고역하며 세력을 넓힘
문제점- 소국들의 독립성이 강함
결과- 신라에게 흡수됨
일단 간단하게 나타내 보았구요,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위해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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