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상암의 개혁 및 진통일
한나라의 건국
진⋅한 교체기에서 고조선에 일어난 일
위만 왕조와 몰락
한사군
상암의 개혁 및 진통일
진나라는 물론 전국 7웅에 들어가는 나라였지만 사실 춘추시대까지는 후진국이었다고 합니다.
아앗.... 그래서 저저번 포스팅할 때 자료가 잘 안모아졋구나.
But, 후진국이었기에 귀족의 힘이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약했어요.
약하면 뭐가 좋으냐? 과감한 혁신 정책을 할 수 있어요.
그리하여 정복을 차근차근 한->조->위->초->연->제나라까지 정복하여 마침내
진 통일이 이루어졌습니다 빠밤!!
그리고 진나라는 강력한 왕권을 가지게 되는데 그중 단연코 빠뜨릴 수 없는 왕은
진시황!!!!!!
그리고 진시황은 과도하게 힘을 flex하는데...
그 결과는 여러분도 알죠? 멸망..
2. 한나라의 건국
한편 초나라 귀족이었던 항우, 걸인 유방은 진나라의 수도를 장악하기 위해 싸웠습니다.
그리고 유방이 이기고 한나라가 건국되었죠.
3. 진⋅한 교체기에서 고조선에 일어난 일
한편, 다소 평화로운 고조선에는 준왕이 살고 있었어요.
아무튼 이 혼란기 사이에 위만이 고조선에 방문했어요.
사실... 준왕은 예전에 연⋅제⋅조나라 백성들이 고조선에 도망왔을 때
서쪽 지방에 살게 했어요. 그 중 실력이 뛰어난 ‘노관’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유방이 한나라를 건국하고 그 친구(노관)를 연나라 제후로 삼았어용.
노관은 ‘내가 왜 유방 눈치 보는 제후를 해야 하는 건데!!’라고 생각했는지
반란을 일으켰어요.
노관의 부하 위만은 ‘우리 캡틴이 반란을 일으키다니 후덜덜’하며 준왕에게 왔지요.
준왕은 ‘머... 갠찮앙’ 하고 받아줬지만 통수!!(...노관의 부하답네요...)
어쨌든 준왕은 남쪽으로 도망갔어요. 근데 마항의 진왕에게 격파당해 소멸되었다고 합니다.
4. 위만 왕조와 몰락
위만 – 연나라 사람
- 진한 혜제 때 왕으로 승격
- 통치방식: 고조선 이전 방식 그대로(휴 다행이다 ㅠ.ㅠ)
암튼 그 이후로 디게 점점 잘나가게 됬어요. 고조선 마지막 왕(우거왕)때는 peak였지요.
한편, 한나라는 그때 왕이 무려 “한 무제”였다. 무조건 팽창!팽창!을 외치는 분이죠.
흉노족도 맘에 안들고, 흉노족이랑 친구(?)먹는 고조선도 마음에 안들죠~~
어쨌든 “한 무제”가 다스리는 한나라 군대였기에 1년간 싸웠지만 워낙 막강한지라 고조선은 결국 멸망했어요.
5. 한사군(BC 108~314)
한사군이 설치가 되었고 그 때문에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등이 만들어지는 시기가 늦춰졌어요.
그런데 한사군은 어디서 설치된 걸까요??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합니다.
(1)강단 사학자의 의견
대표 기사 한겨레의 기사를 요약해 보겠습니다.
<낙랑군은 평양에 있었다>
한사군: 낙랑군⋅현도군⋅임둔군⋅진번군
-> 이 중 낙랑군만이 400여 년동안 존속했다.
*참고로 기와 끝 막새들이 평양지역에 발견한 사실도 근거에 놓았습니다.
제가 보기엔 아직 정확한 근거는 아닌 것 같아서 일단 뺐습니다.
예)백제의 칠지도가 일본에서 발견되면 뭐 일본이 백제한테 하사했다느니 등등... 그런건 하지맙시다.
평양에 있는 근거
① 조선후기 학자들 뿐만 아니라 고려중기 학자들이 평양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조선후기 대표학자 정약용: <아방강역고>“낙랑은 지금의 평안도와 황해도 2도의 땅”
-고려중기 김부식과 일연: <삼국사기>지리지,<삼국유사>에서 “평양성은 한의 낙랑군”
②이덕일 소장의 실수-1차 사료 증거가 알고보니 원본과 주석을 구분하지 않고 냈다. (마구잡이로 가져왔다는 것)
③1차 사료대로 하면 한반도는 빈 공간이 된다.
출처: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3995.html
근데 궁금한게 있음.
남쪽은 ‘조선과 예맥’이라니?
고조선이 멸망하고 한사군이 감시하고 그 다음에 부여->고구려->백제 이렇게 각각 세워졌잖아. 조선와 예맥이라니!!! ‘조선’예맥이겠지..
출처: https://kys4507.tistory.com/13
아마 쉼표가 있어서 헷갈려서 그런 걸 수 있음..
나무위키(출처를 나무위키 하니까 디게 쪽팔리긴 한데ㅠ)
조선이 그 고조선이 아니라 부여와 같은 만주 동북지방의 초기국가라는 뜻!
뭐 이건 그렇다 치구... 기사 댓글 보니까
“삼한,부여,고구려를 합한 총면적이 동서 4천리 남북6천리로 기록되었음.”이라고 하면서 반박하시더라구요, 보니까 저도 이것 관련해서 궁금하네요.
(2)재야 사학자의 의견
이투데이 기사가 이분들의 의견을 대변해서 채택했습니다.
반박내용
①“낙량군=평양”이 통설이 아니다!
->윤내현: 중국 사료를 낙랑이 요서지역임을 알 수 있다.
‘고조선 연구’에서 사마천의 ‘사기’ 등 중국 사료를 통해 낙랑이 지금의 요서 지역에 있었다
② ‘환단고기’ 사실의 진위를 따지는게 더 관건이다
->중국 사서 내용과 다르면 조작이라고 몰아가는 것은 일제 식민사학자들과 다를 게 없다.
③낙랑군은 철저히 식민지배했다
안정준 왈,“낙랑군의 중국인과 조선인을 지배계급-피지배계급 구도로만 보는 것은 어렵다”.
->낙랑군 지배자가 중국인이고 한국 관료애들이 협력했으니까 낙랑군은 식민지배 안했다? 당시 조선을 일제 식민지로 보기 어렵다’는 논리와 같다. 섬뜩한 주장이다.
출처: https://www.etoday.co.kr/news/view/1360441
(3) 내 의견
http://blog.daum.net/sbc17/4304212
현재까지는 이분이 쓰신 글을 보고 나 역시 요서라고 생각한다.
다만. 재야 사학자의 의견 역시 평양이 그 평양이 아니다라는 것만 알지, 구체적으로 어디였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보아 좀 더 지켜봐야겠다.
좀 더 내용을 체계화하고 정리해야 할 듯 하다.